나에 대하여
home
20대의 서사
home

20대의 서사

새내기였던 나, 대학언론인이 된 이유

책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中 ‘졸업을 미뤘다, 대학언론을 위해’ 원고 수정
2017년, 필름으로 촬영한 단국대학교.

━ 비영리 활동에 뛰어들다

학문의 전당, 캠퍼스 커플, 멋진 선배님과 교수님, 토론 문화, 낭만을 품은 교정,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본 대학의 풍경을 느껴보고 싶었다. 폭력과 혐오, 배제의 대상이 된 경험은 나를 더욱더 대학이라는 로망에 빠지게 했다. 그 누구도 폭력과 혐오에 노출되지 않고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간절히 원했다. 기자를 꿈꾸며 재수했고, 그 꿈을 안은 채 대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그곳은 내가 꿈꾸던 공간이 아니었다. 입학한 달 내가 마주한 것은 술 마시자고 후배를 부르며 괴롭히는 선배,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과목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게 한 것은 학우들의 의식 상태였다. 누구도 자신과 사회의 미래를 그려내지 못하고, 놀거나 멍하니 있기만 했다. 그들에게는 꿈도, 대의도, 사랑도 없어 보였다. 술 한 잔에 한탄하며 이상에 대한 미련을 지우고 있었다. 그 외의 무엇도 상상하기 힘들어했다. 그저 대학을 ‘취업을 위한 관문’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문득 학우들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내지는 취업 시장이라는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가는 상품’같다고 생각했다.
2016년, 더나은 네트워크 활동 모습.
우리는 어떻게 걸어야 할지 늘 고민했다.
그들을 거부하고 싶었다. 그 길로 전공 공부를 제쳐두고 견문부터 넓히기 위해 뛰어다녔다. 다양한 공동체에 스며들어 사회에 관해 자신만의 관점과 문제의식을 지닌 사람을 만나러 다녔고, 그들을 기록하고 이해하려 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진로 활동은 그들의 마인드셋을 내게 스며들게 했다. 나아가 내가 속한 사회의 문제를 살펴볼 수 있는 시야를 터주었다. 학교에 생활비가 없어 남이 먹다 남긴 식판을 훔쳐 밥 먹는 학우가 있다는 사연을 접하고, 마음 속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에 오면 다들 밥은 먹고 다닐거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하면서 등록금을 벌다 보니 정작 학업과 생계엔 신경 쓰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 무척 많았다. 밥조차 먹지 못한 채 공부하는 학우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학년을 마칠 무렵,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십시일밥>이라는 비영리 활동에 뛰어들어 단국대학교 지부를 설립했다.
2015년, 단국대학교 십시일밥 1기 운영 중일 당시 학생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 차종관.
<십시일밥>은 학생들이 공강 한 시간에 학생 식당에서 일해 번 아르바이트비로 식권을 되사서 취약계층 학우들에게 나누어주는 비영리단체다.
먹고 사는 것이 자신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단 사실을 알아준 걸까. 의외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학우들이 많았다. 함께 일할 봉사자들이 순식간에 모였다. 우리 팀은 학생식당과 협상하여 업무협약을 맺고, 밥을 퍼고, 국을 뜨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했다. 꾸준히 땀흘려 일한 공강시간은 모두 식권으로 돌아왔다.
단체는 6개월 만에 연간 200명의 봉사자가 식권 2,000장을 기부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계산해보니 교내소득분위 0분위 학생 모두, 1분위 학생 절반에게 식권을 학기당 20장씩 지원할 수 있었다. 학생팀은 단국대학교 취약계층 학생들의 학기중 식사 문제를 거진 해결했다고 확인해주었다. 내가 속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체를 조직하고, 성공적인 사업 모델을 만들어 사회문제의 해결에 이르렀다는 것. 비록 작은 규모지만 내 인생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 대학 공동체의 현실과 나의 결심

이러한 과정과 경험은 내게 큰 성취감을 주었지만, 반대로 내가 속한 대학 공동체의 민낯을 뚜렷이 보게 해주었다. 학생 사회는 구성원의 무관심 속에 와해되고 있었고, 학생자치기구와 대학언론도 그 의미를 함께 잃고 있었다. 대학 구성원은 대학에서 발생하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회 문제에 대한 정보를 접하더라도 인식과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내가 의견을 낸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생각이었을테다.
‘우리 과 없어지는구나, 별수 없지’라며 자포자기하는 모습은 대학 본부의 일방적인 학사구조 개편으로 번졌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어떤 의견도 행동도 표출하지 않았다. 익명 커뮤니티 뒤에 숨어 댓글을 쓸 뿐이다. 대학 사회는 한국 사회의 거울이라 생각한다. 미래의 한국 사회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 현재의 대학 사회일 것이다. 대학 사회와 한국 사회를 집어삼키는 가장 큰 적은 '패배 의식'이 아닐까. 우리 세대는 그동안의 성장 과정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한 적이 없었다. 승리를 쟁취한 적도, 패배에 쓰라린 적도 없었다. 우리에게 작은 승리의 경험이라도 손에 쥐여 주고 싶었다.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2018년, 단국대학교 비민주적 학사행정 규탄대회 현장.
2016년, 더나은 네트워크 주관 행사에 참여했다.
사회 문제를 상대로 승리하려면, 우선 문제를 인식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대학 내에는 식권 문제 말고도 수많은 문제가 있는데, 대부분이 대학 구성원에게 인식조차 되지 않았다. 해결 단계는커녕 인식 단계조차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문제를 알릴 만한 곳은 대학언론뿐이다. 그러나 대학언론은 대학본부 직속 기관으로서 지원받고 있기에, 대학당국에 의해 좌우돼 위기를 겪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학생 개인이나 학생회가 문제를 들추려 해도 소용없었다. 대자보가 뜯기거나 '학교 명예에 해를 끼쳤다'며 징계받기 일쑤였다.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2항은 대학에 적용되지 않았다.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간행물 발행 시 지도교수의 지도나 총장의 승인이 필요한 곳은 전국 4년제 대학 172개 중 143개에 달한다. 대학은 소신껏 문제를 제기할 권리조차 박탈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이런 현실 속에서 ‘대학 사회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자연히 나의 ‘미션’이 되었다.
대학생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해결 단계까지도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은 서로에게 귀감이 되어 또 다른 문제 해결 참여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대학생은 기존 교육 과정에서 배우지 못했던 ‘문제를 상대로 승리해보는 경험’을 학습하며, 스스로 자주적이고 건강한 대학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다. 이는 한국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인식하고 해결할 용기와 역량을 갖춘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토대가 된다. 나는 ‘대학사회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대학사회를 넘어 한국사회의 병폐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비전을 가지고 대학언론인으로 살기 시작했다.
2020년, 다음세대재단과 사랑의열매의 비영리스타트업 성과공유회에서 발표하는 모습.
대학알리 2.0을 맞아 콘텐츠 기조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말하고 있다.

━ 대학독립언론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대학알리를 재창간하다

학교의 편집권 침해에 맞서 문제를 알릴 수 있는 언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저널리즘으로 전공까지 바꾸고 2017년 7월 대학언론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모교에 대학독립언론 <단대알리>를 창간해 대학 공동체 구성원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했다. 출근길에 나선 총장님을 기습적으로 인터뷰하거나, 불법 촬영 피해자에게 조심스럽게 취재를 요청했다. 어느 매체보다 학내외 이슈에 가깝게 위치하며 학우들에게 소식을 알렸고, 학우들은 사건이 터지면 ‘알리 뭐해 어서 취재 안 하고’라며 우리 매체를 찾았다.
하지만 독립언론에도 한계는 있었다. 2012년 전성기를 맞았던 대학독립언론 <잠망경>, <성신퍼블리카>, <국민저널>, <고급찌라시>는 현재 우리 곁을 떠났다. <단대알리> 역시 인원 부족으로 내 곁을 떠났다. 그때부터는 모교라는 작은 세계부터 바꿔보자는 관점을 버렸다. 대학독립언론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활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엔 대학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자생하지 못하고 줄줄이 폐간하고 있는 <세종알리>, <회대알리>, <시대알리>, <한림알리> 등의 <N대알리>를 살리기 위해 일했다.
2019년, 대학언론협동조합 퇴임식 모습.
알리의 1세대와 2세대가 한 자리에 모였다.
본래 <N대알리>는 이름만 같았을 뿐 개별적인 단체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 곳이 위기를 겪어도 다른 곳은 손 쓸 도리가 없었다. 2013년 <외대알리>로 시작된 <N대알리>는 여러 대학으로 확장되었지만, 2019년 초에 들어서는 <외대알리>를 제외한 모든 단체가 폐간 수순을 밟았다. 그때 폐간된 <N대알리>와 아직 폐간되지 않은 <N대알리> 사람들 모두가 위기감을 바탕으로 헤쳐모여 TF를 꾸렸다.
TF는 <N대알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하나로 통합돼 서로를 보살펴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N대알리>를 창간하고 이끌었던 <대학언론협동조합> 선배님들의 퇴임 이후, 나는 대학독립언론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대학알리>의 대표, 발행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을 하나의 비영리독립언론으로 재창간했다.
2019년, 서울시NPO지원센터의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 3기 합격 후 동기들과 촬영한 사진.
2019년, 다음세대재단과 사랑의열매의 비영리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사업 합격 후 OT에서 촬영한 사진.
그 후 극적으로 <서울시NPO지원센터>의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 <다음세대재단>과 <사랑의열매>의 ‘비영리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사업’에 합격했다.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정체성 정립과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해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생계와 진로 등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팀이 분열하기도 했다. 독립언론 지원조직이 될 것인지, 아니면 중앙매체가 될 것인지, 데스킹 없는 대학생들의 콘텐츠 플랫폼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대학생 단체가 지속 가능할 수 있는지 등 다양한 고민을 마주할 때에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모르겠는 시간도 길었다.
2019년, 대학알리 재창간 시점에 찍은 사진.
2020년, 대학알리 2.0 발표 시점에 찍은 사진.
하지만 팀은 다시 꾸려졌고, 비전과 미션은 빠르게 정립되었으며,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지, 단체가 지속하기 위해 기자가 즐겁고 성장할 수 있는 활동 환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등의 의문들을 해소해나갔다. 지금도 '독립언론'이라는 단어는 위태로워 보이지만, 그럼에도 성장하는 과정에 있기에 우리의 시도는 가치 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훨씬 밀도 있게 대학독립언론이 나아갈 길을 짚어나가고 있는 <대학알리>팀은 <대학알리>와 함께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며, 활동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노력 끝에 <대학알리>는 매체 및 단체의 기초를 잡을 수 있었다.
2021년, <대학알리>는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된 뒤 첫 총회와 선거, 연차보고를 무사히 마쳤다. 선배인 대학언론협동조합이 대학으로부터 독립을 했다면, 우리는 정체성 정립과 지속가능성 모색을 했다. 이제 후배들은 NPO로서 자립하는 것, 대학별 독립언론 <N대알리>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것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우리 기사를 통해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사회적 가치는 어느 정도인지 측정해보고자 한다. 기자들이 즐겁게 활동하고, 함께 성장하고, 상호 연대하고, 스스로 성찰 할 수 있는 공동체로 지속할 수 있도록, 건강한 활동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도 물론이다.
2021년, 유니브엑스포 서울 주관의 유니브페스티벌에 부스 참여한 모습.
2023년, 대학알리 홈커밍데이에서 찍은 기념사진.
“총장님, 이사장이 두렵습니까”
“소송 취하하면 장학금 줄게” 학생 압박하는 대학
“학생 커뮤니티에 고발된 A교수의 근무태만”
“우리 학교, 성폭력, 지금 여기”
모두 <대학알리>가 작성한 기사들이다. 총장의 비리, 대학생의 주거권, 총장직선제를 향한 투쟁, 학내 성폭력, 커뮤니티 속 혐오, 여성 청년의 우울 등. 기자들은 기성언론 및 기존 대학언론과 차별화된 색다른 콘텐츠를 통해 독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대학알리>가 어떤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지, 알려야 할 알 권리와 목소리는 무엇인지,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알리>는 지금까지 편집권을 침해 당한 학보사가 발행하지 못하는 고발성 콘텐츠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제는 고발성 콘텐츠를 포함해, 대학에 속한 소수자가 존중받지 못하는 현상, 대학사회에 공동체적 의미가 작용하지 못하는 현상, 개인 간의 혐오가 심해지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고자 한다. 다양화된 개인의 서사와 증언을 포용하고 조명하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환기할 것이다. 변화하는 대학생, 그리고 청년들의 특성을 세심하게 포착하여 그들의 언로가 될 것이다. 또한 기성세대의 시각에서 바라본 청년의 이미지도 넘으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대학알리>는 대외로부터 대학생 당사자의 대안언론으로써 대학생의 언로를 틔웠고 편집권과 자치권을 방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알 권리와 목소리에 갈증을 느낀 이들이 인프라를 지원받아 쉽고 편하게 자신의 대학에 독립언론 <N대알리>를 창간할 수 있는 선택지를 만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대학알리>와 <N대알리>라는 대학독립언론 브랜드를 안정 궤도에 올려놓은 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이끌어갈수록 명확한 한계를 느꼈다. 이 방법으로는 독립언론이 창간된 대학에서만 언론자유가 실현되기 때문이다. 독립언론을 창간하고자 하는 수요는 무척 드물게 발생한다. 이런 창간 속도로는 전국 모든 대학에 독립언론이 생기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2020년, 대학언론인 네트워크의 첫 행사 현장. 대전에서 간담회를 열었었다.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초기 멤버의 프로필 사진.

━ 대학언론의 위기 극복을 위해 대학언론인 네트워크를 창립하다

이에, 나는 학보사 등 기존의 대학언론이 위기를 극복해 제 기능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새로운 목표를 수립했다.
대학언론의 위기란? : 대학언론은 인력난, 학교로부터의 예산 삭감과 편집권 침해, 급변하는 미디어 시대에 대한 대처 부재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위기를 겪고 있다. 대학언론의 위기 원인은 어느 하나로 꼽을 수 없으며, 복합적이다. 1992년 모 언론사에서 처음 대학언론의 위기가 언급된 이래 대학언론이 대학언론의 위기에 관해 논하는 기사는 다수 발행되었다. 그러나 위기의 현상에만 주목했을 뿐, 대학언론의 위기 원인이나 해결 방안에 관해서는 누구도 짚지 못했다. 2000년대 이후 많은 대학언론이 위기를 넘지 못하고 폐간되었다. 위기가 발생하면 원인을 발견하고 해소해야 하는데, 대학언론은 원인 파악과 해결책 모색, 성찰에 지지부진한 채 30여 년째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대학언론인 네트워크>의 전신인 <전국 대학생 학보사 기자 페이스북 모임> 운영자는 “민주화 이후 학생운동이 사그라들던 시점인 1990년대 초반부터 대학언론의 위기 담론이 등장해왔다”며 “이젠 위기라는 말도 진부한 이야기”라고 전했다. 어쩌면 위기가 아닌 이미 ‘붕괴와 소멸’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지역 대학언론을 시작으로 조직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고, 학생운동의 주축이었던 공동 담론도 사라지면서 대학언론 간 교류도 줄어들고 있다. 대부분 대학언론은 기본적인 역할조차 수행하지 못한 채 독자에게 외면받고 있다. 대학언론의 콘텐츠는 에브리타임 등 학내 커뮤니티에 게시된 글보다 영향력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을 해야 대학언론의 위기 극복을 달성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나의 고민을 여러 대학언론인과 나누고자 대학언론인 커뮤니티 <전국 대학생 학보사 기자 페이스북 모임>에 함께했다. 한 해 동안 '대학언론이 위기를 극복하고 제 역할을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고 의견을 나눴다. 필요하다면 포럼과 간담회도 열었다. 그 결과, 해결 방법이 도출됐다. 전국 대학언론이 위기를 극복하고, 언론으로서 제 역할을 하도록 연결하고 지원하는 비영리단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이름은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우리는 3,600여 명의 전현직 대학언론인이 소속된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단체를 조직했다. 지역별 대학언론 포럼을 통해 각 지역의 대학언론인을 조직하여 자체적으로 연결과 지원을 나눌 수 있는 '지역위원회'도 구성해주었다. <부산 대학언론인 네트워크>의 경우 공동취재단을 통해 시사인 대학기자상 대상을 수상했다.
대학언론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학언론이 정체성을 확립하고 좋은 콘텐츠를 발행하여 독자를 확보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학언론이 언론으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기초부터 다져줘야 한다. 대학언론에 입사했음에도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실무에 투입되는 대학언론인을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대학언론인 아카데미>는 우리의 핵심 사업이 되었다. 지금까지 시그니처 코스 1-4기와 클래스, 세션을 운영했고, 도합 8,000여명의 수강생을 모객했다. 이외에도 전현직 대학언론인들이 모여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대학언론인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기성언론과의 취재 협업도 주선한다. <MBC 엠빅뉴스>와 코로나 시기 대학 교수의 강의 재탕 문제를 취재했다. 해당 영상은 조회수 100만회를 달성했다. 기성언론과 대학언론인 성장 지원을 통한 사회공헌 실현에 관한 협약을 진행해 <쿠키뉴스 청년기자단>을 6기째 진행하고 있다. 대선 시즌 심상정, 유승민, 원희룡, 김동연 후보와 간담회도 진행했으며, 국회 토론회를 4회째 기획 및 공동 집행했다. 대학언론의 사료를 모은 드라이브, 대학언론 정기조사를 통한 대학언론 리스트도 운영한다.
이렇게 다양한 대학언론인의 필요를 발굴하고 솔루션을 실행해 지금의 '대학언론의 위기'가 해소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대학언론인 네트워크>의 역할이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활동은 앞으로도 대학언론인들의 자율적인 위원 참여로 이루어질 것이다. 대학언론이 위기를 극복하고 제 기능을 하는 것은 일순간에 되는 것이 아니다. 꾸준한 관심과 참여가 있어야 한다.
2022년, 대학 내 언론자유 실현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열었다.
국회 토론회를 여는 법을 배우는 것, 제법 재밌는 경험이었다.

━ 대학 내 언론자유 실현을 위한 정책 활동에 나서 교육부 방침 얻어내다

대학언론의 위기 극복이 단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빠르게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했다. 바로 ‘대학 내 언론자유를 실현하는 것’. 대학 사회의 언론 자유는 비단 대학언론만의 것이 아니다. 학생자치기구, 대학생 그리고 대학을 구성하는 모든 이에게 필요하다.
현행 고등교육법은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운영의 기본적 부분을 상당 부분 학교 규칙(이하 ‘학칙’)을 통해 규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학생자치활동 역시 제12조(학생자치활동)에 의거하여 개별 대학이 정한 학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학생자치의 방식을 각 대학의 특성과 자율에 맡겨 대학 구성원의 합의를 장려하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학생자치와 대학언론은 법적 공백으로 남아 대학 본부의 입맛에 맞게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이는 곧 대학생 당사자의 권익을 심각하게 훼손할 근거가 된다.
특히 1980년대 대학 본부에 의해 제정된 학도호국단 학칙의 유산인 현행 학칙의 경우, 비민주적 요소가 내포돼 학생들의 권익을 훼손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대학생 당사자와 시민단체는 이러한 학칙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해 2007년 시정명령까지 끌어냈지만, 대학의 74%는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시정되지 않고 있다. 그에 따라 대학언론 역시 기자 해임 및 편집권 침해를 부지기수로 당하고 있다. 고등교육법과 언론법에도 보호받지 못하고 총장이 발행인, 주간 교수가 편집인인 구조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대학생 개인과 학생자치기구의 경우 ①교내 집회에 총장의 사전 승인 필요 ②학생지도위원회의 ‘내 맘대로’ 징계 ③검열 없이 붙을 수 없는 대자보와 현수막 ④학생자치단체 조직을 위해선 학교 허가 필요 ⑤학생자치기구 대표자의 자격 기준 제한 존재 ⑥학생의 정치활동 금지 ⑦학생의 사적 영역 규제 ⑧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 불가 ⑨강의실 대관에 학교의 검열 등의 문제를 현행 학칙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겪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대학 현장에서 상대적 약자에 해당하는 대학생 당사자의 권익은 방치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비민주적인 학칙 조항을 철폐하고 대학언론에 대한 탄압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2021년, 숭대시보 언론탄압사태에 맞서 TF를 꾸리고 대학 본부 규탄 기자회견을 했다.
나는 대학언론 탄압 사례를 아카이브하고 대응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숭대시보 언론탄압사태에 대응해 TF를 만들고 기자회견 주관 및 성명 게시를 했다. 수많은 공론장에 참여해 대학 내 언론자유 실현의 필요성에 대해 알렸다.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등 거버넌스에 참여해 대학 내 언론자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관련 부처에 학생자치 지원 조례 등의 정책을 제안했다.
문제에 대한 인사이트와 네트워크가 쌓이자, 대학 내 언론자유 실현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기획집행했다. 토론회에서 도출된 솔루션은 관련 부처에 즉각 제안했다. 대학언론법과 학생자치법 등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제작하고 윤영덕 의원실을 통해 발의하기도 했다.
2022년, 더불어민주당과 정책 협약을 한 모습.
정의당과의 정책 협약도 있었다. 대선 공약화도 이루어졌다.
20대 대선에도 대응하여 더불어민주당, 정의당과 대학 내 언론자유 실현을 위한 정책 협약을 이끌었고 일부 정당에서는 공약화도 진행됐다. 비민주적 학칙 폐지 캠페인을 여러 학생회 단위와 진행했고, 전수조사 결과물을 바탕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2년 동안 강득구 의원 등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들과 협력해 국정감사에서 교육부 장관, 차관, 국가인권위원장, 서울대학교 총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를 상대로 질의를 이끌었다.
2년 간의 정책활동 결과, 교육부로부터 대학언론 탄압 및 비민주적 학칙 피해에 대한 대응방침을 받아냈다. 이제 대학에서 언론탄압이 발생하면 교육부는 진상조사위원회를 대학 내에 설치하도록 조치하고 관리감독할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예산만 만족된다면 대학언론 탄압과 비민주적 학칙으로 인한 피해를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대학마다 인권센터가 신설된 만큼, 이곳에서도 언론자유 침해 피해에 대해 털어놓을 수 있다.
2023년, 교육부의 언론탄압 대응 방침을 받아내고 촬영한 사진.
2021년,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전문위원 위촉 직후.

━ 대학언론의 후일을 도모할 ‘불씨’를 틔우다

정책활동이 빛을 볼 때쯤, 나는 정규직 취업에 성공해 2023년 2월 <대학알리>, 2023년 4월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현직에서 퇴임했다. 동료들은 이쯤이면 되었다고 했다. 다만 내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오랜 활동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대학언론이 위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학언론의 위기를 내손으로 끝내 극복해내지 못했다는 부채감은 나를 옥죄어왔다. 코로나19 여파가 뒤늦게 찾아와 지역의 학보사, 수도권의 교지들이 폐간 수순을 밟고 있다는 소식은 나를 더욱 아프게 했다.
2024년,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불씨 현장 모습.
3일간 누적 270명이 다녀갔다.
내 세대에서 문제 해결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대신 대학언론의 후일을 도모할 수 있도록 전환의 신호탄을 쏴야 한다는, 위기 극복을 위한 불씨를 틔워야 한다는 마지막 책임을 다하기로 했다.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불씨’는 그렇게 기획집행됐다. 30여년간 분절된 채 위기에 신음하던 전국의 대학언론인이 모여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만들고, 이를 집행할 팀을 만들고, 함께 극복하자는 공동의 약속을 하는 ‘사건’이자 ‘계기’를 만든 것이다.
강의실로 이동해 위기 요인별 토론도 진행했다.
기성언론과 함께 공모전도 열어 대학언론인에게 콘텐츠 실현의 기회를 제공했다.
퇴근 이후의 삶을 행사 준비로 채운지 반년, 사무국 동료들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3일의 행사를 완벽히 준비할 수 있었다. 우리는 누적 270명의 불씨를 틔웠다.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자신이 속한 대학언론의 문제를 직시하고, 위기 극복을 실행에 옮길 용기를 얻었다고 말한다. 불씨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 대학 공동체의 민주주의도 건강해질 것이다. 후세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는 텅 빈 행사장을 정리하며 대학언론인의 신분과 20대의 미션을 비로소 내려놓았다. 내 차례는 끝났다. 이제 바톤을 받아든 후배들의 투쟁이 시작될 것이다.
현장에서 사무국장으로 역할하는 모습.
대학언론 커리어의 마지막은 제법 화려했다.

━ 앞으로의 나는

오로지 미션과 비전을 위해, 지난 9년간 학생활동가이자 대학언론인으로 살아왔다. 나는 어느 대학생도 시도하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이 미션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도저히 30대를 맞을 자신이 없다’는 마음, 그 간절함, 그 처절함으로 활동해왔다. 아직 완벽히 문제를 해결했다고 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놓지 않고 꾸준히 활동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떠한 사회 문제도, 하루, 한 달, 일 년만에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정과 끈기로 집요하게 문제를 물어뜯는 사람이 차종관이다. 동료들은 나를 그렇게 평가한다. 내가 속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온 지난 삶을 바탕으로, 나는 세상을 바꾸는 무모한 사람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더 나은 세상은 가만히 있으면 오지 않는다. 이 땅의 많은 언론인이 정의로운 저널리즘을 실현하여 시민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졸업은 2022년에 했다.
이제 지옥 시작이다!
이제 나는 대학 사회를 떠나 한국 사회에 편입됐다. 대학언론인이라는 신분도 벗었다. 다만 나는 앞으로도 사회혁신가, 문제해결자, 활동가의 자세를 갖춘 한 명의 민주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다. 끈기 있고 집요하게 문제와 싸우는 사람, 관찰하고 발견하고 끝내 해결하는 사람, 차종관을 기대해달라.
나는 언제나 그런 곳을 꿈꿀 것이다. 세상을 작은 희망들이 살아 있는 곳,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 곳, 내가 사랑할 수 있고 살아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 것이다.